◀◀◀ 교문을 나서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할 일도 없이 미적대다가 늦게 나온 터라 교정 주변은 한산했다. 토요일이어서 수업이 일찍 끝났기 때문에 다른 날보다 아이들이 하교하는 속도가 빨랐다. 공부하는 녀석들은 시험을 앞둔 주말을 공부로 불태울 것이었고, 공부하지 않는 녀석들은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노느라 주말을 불태울 것이었다. 보통 때라면 태웅은 후자...
▶▶▶ 마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병원 대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몸에 난 병의 통증은 때를 가리지 않고 찾아왔지만, 마음을 치료하는 건 매우 더디게 이뤄지는 일이라 곧 문을 닫을 병원에 급하게 들이닥치는 환자가 많지 않았다. 접수대에 앉은 간호사 둘이 두런거리는 목소리가 낮게 들렸다. 태웅이 다가가 얼굴을 보이면 지난번에 사인을 받았던 간호사가 어멋,...
▶▶▶ 알람보다 늘 먼저 눈을 떴다. 억지로 깨우는 게 싫어서 알람보다 1분이라도 먼저 눈을 뜨는 게 몸에 뱄다. 잠에서 깬 태웅은 얼마간 멍하니 누워 천장을 마주했다. 행동이 빠릿빠릿하지 못한 편이라 뭘 하든 시간이 걸렸다. 방 안의 공기는 훈훈한 편이었으나 태웅은 겨울에나 덮을 법한 도톰한 이불을 목 아래까지 폭 덮어썼다. 낮에는 후텁지근한 바람이 부...
◀◀◀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공이 가뿐하게 림을 통과했다. 태웅의 깔끔한 3점 슛이 성공했지만 환호해줄 동료는 없었다. 학교에 농구부가 없기 때문이었다. 선수도 관중도 태웅 혼자였다. 운동장 흙바닥에 떨어진 공이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몇 번 튀다가 멈췄다. 공이 여러 개 있다면 연습의 흐름이 끊기지 않을 텐데. 태웅은 하나뿐인 제 ...
▶▶▶ 상냥한 목소리로 이름이 불리면 태웅은 천천히 일어나 진료실 문 앞에 섰다. 벽과 색을 맞추어 흰 페인트로 칠한 나무문을 손가락 관절로 콩콩 두드렸다. 안에서 대답이 들려오지는 않았으나 그대로 문을 밀고 들어갔다. 커다란 목제 책상 뒤에 서글서글한 인상이 썩 미더워 보이는 편은 아닌 젊은 의사는 이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고 차트를 열심히 적어 내려가고...
* * * “쟤 왜 저러냐? 애인이랑 싸웠대?” 아님 헤어졌나. 사장이 찬석에게 물었다. 찬석이 커다란 국자를 든 채로 주방 문간으로 달려 나왔다. 정빡빡 애인 있어요? 사장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다행히 우성의 귀에는 닿지 않은 듯했다. 홀 가장 안쪽 구석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은 그는 팔각 성냥갑에 든 성냥을 하나씩 꺼내서 허리를 분지르는 처형을 집행 ...
* * * 서태웅은 사흘 연속으로 같은 시간에 상춘각에 전화를 걸어 음식을 주문했다. 그가 시키는 건 이만 원짜리 짜장면과 탕수육 소짜 세트였다. 속삭이듯 차분한 음성은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다. 음식이 예고도 없이 한 시간쯤 늦는대도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줄 것 같았다. 자영업자가 가장 반기는 손님의 유형으로, 서비스라도 하나 더 챙겨주고 싶어지는 예의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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